풍물이란 무엇인가?우리 민족에게 풍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
풍물의 역사적 기원과 그 변천에 대한 미학적 탐구
책 소개
풍물이란 무엇일까? 어떤 이는 ‘풍물’이라고 하고, 어떤 이는 ‘농악’ 또는 ‘매구’라고도 부르는데, 이것의 정체는 여전히 안개에 휩싸인 미지의 기호이다. 도대체 언제, 누구에 의해서 이러한 연행이 시작되었으며, 이러한 장단과 가락에는 어떤 미학적 함의가 담겨 있는 것일까?
이 책은 우리 민족의 전통예술인 ‘풍물’의 역사적 유래와 그 예술적 의미를 미학의 관점에서 다룬 저작이다. 저자는 풍물이 조선시대부터 현대까지 어떻게 변화·발전했는지 그 변천과정을 추적하면서 풍물이 단순한 민속예술을 넘어 미학적·철학적 가치를 지닌 중요한 문화유산임을 강조한다. 특히 풍물이 농악, 매구 등의 민속 예술과 연결되어 공동체 의식을 표현하는 수단이었다고 설명한다. 풍물의 역사적 기원과 왕실에서의 사용, 그리고 현대적 변천 과정에 대한 분석을 통해, 독자들에게 풍물의 전통적 가치와 현대적 재해석의 필요성을 제시하고 있다. 따라서 이 책은 이제까지 없던 풍물에 대한 논의를 본격적으로 시작한다는 면에서 출간의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풍물이란 무엇인가
풍물이라는 용어는 『조선왕조실록』 연산군 때 처음 등장한다. 그러나 풍물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명확한 언급이 없다. 풍물에 대한 규정은 『승정원일기』 인조 25년(1647) 11월 16일 기사에서 “풍물은 곧 임금이 거동할 때 대가의 앞뒤에서 고취하거나 (외국의) 칙사를 환영하는 연향 때에 사용하는” 악기를 지칭하는 것으로 처음 등장한다. 제사나 조회에 사용하는 악기와 구별하여 풍물이라 한 것이다. 제사나 조회에 편경이나 편종, 축과 어 등의 악기가 사용되었다면, 고취나 연향에는 방향, 비파, 필률, 월금, 대금, 가야금, 아쟁, 해금, 장고 등이 사용되었다. 그리하여 각종 진찬이나 진연 등을 기록한 ‘의궤’에는 “악기풍물”이라고 병기하여 명확하게 구별하였던 것이다. 풍물에는 군악의 요소와 연향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다.
농악‧두레‧매구의 형식적·실질적 구별
농민들이 농사를 지을 때 능률을 올리거나 힘든 노동의 수고를 덜기 위해 했던 농악은 그 역사가 꽤나 오래되었다. 인조 때 안유신(1580~1657)이 지은 「유두관농악」을 비롯하여, 『영조실록』, 권섭의 『옥소집』, 황현의 『매천야록』 등에서 농악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특히 이정직(1841~1910)은 『석정집』에서 농악에 관하여 묘사하고 있는데, 이때 군악과 결합된 양태를 언급하기도 하였다. 또한 농사와 관련된 용어인 ‘두뢰(두레)’도 김윤식(1835~1922)이 지은 『속음청사』에서 처음 보인다. 두뢰(두레)는 7월 백종(百種)의 김매기와 연관된 용어이다. 음력 7월 보름에 김매기가 모두 끝나면, 그 동안의 노고를 위로하기 위하여 술과 음식을 장만하고 북을 치고 징을 울려 서로 오락하는 것을 ‘두뢰연’이라 하였던 것이다. 매귀는 매구라고도 하는데, 나례와 관련이 있다. 「울산부읍지」, 이옥의 「봉성문여」, 권상일의 『학성지』, 오횡묵의 『경상도함안군총쇄록』 등에 그 내용이 전해진다. 가면놀이를 하기도 하고, 꼭두각시놀음을 하기도 하고, 무동을 하기도 하고, 지신밟기를 하기도 하고, 북과 징을 울려 춤추고 뛰어 놀기도 하였다. 크게 보면, 농악과 매구는 그 뿌리를 달리하였지만, 조선 후기 군악적 요소와 결합하면서 발전하게 되었고, 군악의 진법과 가락을 주로 하여 연행되었다. 그 대표적인 것이 전립에 상모를 달고 놀이하는 ‘중피(衆皮)’이다. 그리고 대포수청령할 때의 ‘순령수’, 조선의 군악대인 세악수가 호궤할 때 연주하였던 영산회상과 관련이 있는 ‘영산가락’ 등이 군악과의 관련성을 입증하고 있다.
풍물은 조선 폐망 후 농악‧두레‧매구를 지칭하는 별칭
풍물은 조선의 왕실에서 고취하거나 연향할 때 사용한 악기를 지칭하였지만, 조선의 폐망과 더불어 풍물이라는 용어도 쓸 일이 없게 되었다. 그런데 풍물이라는 용어는 1912년 매일신보의 기사에서 새롭게 부활하게 된다. 경기도 양주군에서 농업계를 조직하고 모를 심거나 맬 때 농악을 울렸는데, 일본에서 국상이 나자 근신하여 풍물을 폐지했다는 기사를 실었다. 이때 농악을 풍물이라고 기록한 것이다. 또한 1921년 동아일보의 기사에서도 농악이나 매귀라는 용어 대신에 풍물이라는 용어를 쓰기 시작했다. 시대의 변화와 더불어 노농동우회 등의 새로운 조직이 출현하기 시작하였고, 이들이 메이데이 시위 행렬을 할 때 풍물을 두드렸다고 기록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912년에 등장하기 시작한 풍물이라는 용어는 조선시대의 풍물을 잘 이어받은 용어라 할 수 있다. 조선의 왕실에서 사신의 접대나 왕의 행차에 사용되었던 악기를 지칭하는 용어였던 풍물에는 군악과 연행의 의미가 들어있는데, 농악과 매귀를 통칭하는 현행 풍물이라는 용어에도 조선 후기 병법의 진법과 신호 그리고 백희, 잡희의 요소가 짙게 배어 있기 때문이다.
풍물은 천도(天道)의 현시이다
농악이나 두레 또는 매구는 군악을 중심으로 변화‧발전하였다. 그런데 조선의 진법은 태극과 팔괘의 효시가 되는 그림인 「하도(河圖)」와 「낙서(洛書)」에서 그 원리를 취하였다. 「하도」와 「낙서」에 따르면 백성이 예의를 알게 되고, 국가는 늘 편안하게 된다고 생각하였다. 「하도」와 「낙서」는 천명의 현시이다. 그렇기에 전쟁에서 필승의 원리였다. 풍물에서 펼쳐지는 구궁진, 팔괘진을 비롯하여, 원진, 직진, 방진, 곡진의 상생하고 상극하는 진풀이는 하늘의 운행을 상징하는 12차(次)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는 천도의 현시를 본받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천명은 「하도」와 「낙서」로 현시되고, 「태극도설」로 드러난다. 그런데 양자역학으로 노벨물리학상을 받은 닐스 보어는 양자역학과 가장 근접한 사유체계로 태극을 들었다. 그래서 그는 노벨물리학상을 받을 때 팔괘가 그려진 옷을 입었으며, 가문의 문장을 태극 무늬로 장식하였다. “대립적인 것은 상보적인 것이다.” 그가 가문의 문장에 새긴 문장이다. 풍물의 기본원리는 「하도」와 「낙서」이고, 「하도」와 「낙서」는 구궁, 팔괘를 비롯하여, 오행으로 드러나는데, 풍물의 치배들이 펼치는 각종 진풀이와 가락은 천명을 현시하고자 하는 우리 민족의 몸짓이라고 할 수 있다.
K-컬처와 풍물의 미래
바야흐로 K-컬쳐의 시대이다. BTS, 봉준호 감독과 박찬욱 감독의 쾌거에 이어, 우리나라에서도 드디어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나왔다. 『채식주의자』와 『소년이 온다』를 비롯한 작가 한강의 작품은 불과 며칠 사이에 100만 부가 넘게 팔렸으며, 해외에서도 높은 인기를 얻고 있다. K-컬처 열풍은 군악에서도 불고 있다. 국제군악제에서 한국 전통악대의 공연에 대한 반응이 매우 뜨거울 뿐 아니라 직접 배우려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처음 보는 군악이지만, 매우 역동적이고 다양한 가락과 진법에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 군인의 전통악대가 선보이는 것이 다름 아닌 풍물이다. 바야흐로 풍물의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앞으로 풍물은, 전 세계에서 K-컬러를 선도해왔던 대중음악과 드라마, 영화, 문학에 이어 새롭게 각광받는 장르가 될 것이다. 바로 그렇기에 우리가 먼저 풍물에 대한 논의를 정립하고, 그 이론 체계를 단단히 가다듬어야 할 것이다.
지은이
송성섭 1958년 출생하였으며, 서강대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 철학과 대학원에서 박사학위(학위 논문 『세종의 음악 창제-세종의 신악과 정간보의 창제 원리』, 2016)를 받았다. 현재 풍물과 탈춤을 비롯한 전통연희에서부터 현대 마당극에 이르는 공연과 문화예술 전반에 대해 연구하는 풍물미학연구소 소장으로, 또 한편으로는 일제강점기의 독립운동가이자 미술사학자였던 우현 고유섭의 활동과 사상을 연구하는 우현미학연구소 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놀이패 한광대 단원과 인천민중문화예술운동연합 의장, 인천민예총 창립 사무국장, 한국문화정책연구소 전문위원을 지냈다. 지은 책으로는 『노자의 도덕경』(2019), 『인천과 소남 윤동규』(공저, 2023), 『인천의 원도사제 연구』(공저, 2024)가 있으며, 논문으로는 「도덕경에 있어서 지각의 지위에 관한 연구」, 「소남 윤동규의 사칠이기설」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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