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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9회 김상열 연극상 시상식 거행
편집실 기사입력  2017/10/24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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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23일 김상열 연극사랑의 집에서 제19회 김상열 연극상 시상식이 거행 되었다.
 

위와 같은 시상식의 행사들은 보편적으로 몇 회만 형식적으로 거행되다가 그만두게 되는데,
정부에서도 할 수 없는 그의 이름으로 賞을 준다는 것은 역사의 뒤안길로 한대표의 뜻깊은 노력과 사례에 대해 박수를 보내고 싶다.

더욱 정부지원도 없이 예술세계는 냉혹하고 붙잡아 주는 사람이 없는데, 이렇게 후대들에게 賞을 제공한다는 것은 씨를 뿌려야 나무를 보듯 장학금을 주고 연극상을 제공하는 모습을 볼 때, 대단하다고 칭찬해주시는 인사말에 한 대표는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힘이 되었을 것이다.
 
김상열 선생이 떠난지도 19년이 되었다.(1941~98)
 
오늘 행사는 김갑수의 사회로 김선생의 약력인 TV수사극 수사반장 집필, 연극, 뮤지컬 등, 41년생(41~98)이라고 상금이 410만원이다. 등, 소개가 끝난 다음, 노경식(반민특위 작가), 서연호 고대명예교수의 인사말씀을 해주셨다. 위에서도 표현했듯이 賞을 주는 자와 받는 자와 관계성, 작품을 써놓으면 공연을 많이 해야 한다. 등 후대들에게 좋은 인사말씀을 해주셨다.
 
이어서 오늘 행사는 제19회 연극상시상식 수상자(최진아)과 제13회 장학금 수여식(고다연)에 이어서 만남의 시간이 있었다.


오늘 참석자는 노경식, 서연호, 전세권, 고석만, 허성윤, 정중헌, 손진책, 이태훈, 최인철 등, 많은 연극인들이 참석하여 시상식이 끝나고 테이블마다 김상열 선생과 옛날의 생활했던 추억들이 생각난 것인지? 식탁에 둘러 앉아 한 잔술에 옛날의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예전의 연극선배들의 활동했던 PD시절, 작가시절 등, 최고의 방송과 연극시절을 돌이켜보는 시간이 되었다.

특히 全선생님은 뮤지컬부분의 "새우잡이" 가 제일 먼저 한국뮤지컬 제작 순위의 1위가 되어야 되는데 왜? 살짜기 ㅡ가  먼저냐? 서운해 하시는 모습을 당시의 제가 유권해석으로 말씀해 드렸다. 뮤지컬은 한 작품에 있어 작곡된 음악부분이 24곡 이상이라야 진정한 뮤지컬이라고 인정해주는 것이다. 또 흑백시절에도 TBC- TV뮤지컬 주말연속극이 제작되었는데, 컬러 TV시대가 되었는데 제작하는 방송사가 없어 아쉽다, 이제라도 TV뮤지컬 주말연속극 기획, 제작을 해주기를 제안하고 바란다.

낙화암의 신발사건이다. 신발을 벗어 놓고 일본으로 떠나가신 선배님! 등 등  필자가 김상렬 연출자와 실제적 만남의 인연은 1978년 현대극장 상임연출로 대형무대 연출가가 없는 상황에서 1988년 극단 "神市"를 창단하고 연극연출은 물론  창작뮤지컬과 마당놀이 등을 연출하면서 부터이다.
 
서울 정도 600년 공연을 기획, 제작할 때, 한양에서 서울까지, 서울사람들이 겪는 민족의 수난사 ~  마땅한 연출자를 찾다가 함께 작업한 1994년 11월 <정도 600년> 기념 공연인 창작뮤지컬 <서울사람들> 이었다.



극본을 각색하면서 밤샘작업을 하시는 열정의 모습은 그 누가 따라 잡을 수 없는 정력가로서 연극, 마당놀이는 물론 뮤지컬까지 활성화 작업을 하셨다.
 
당시 정기공연 작품의 극본이 나왔는데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해서 각색을 시작되었는데,세종문화회관 소속이니까 진행비가 많이 있겠지~ 하고 생각하셨는지, 호텔방을 얻어놓고 정도 600년의 역사성과 기타 등등을 연구하며 각색하게 되었다. 후에 우리에게 진행비항목은 있으나 진행비가 없다는 사실을 아시고, 즉 진행비가 없어 제 월급에서 쓴다는 것을 알고 바로 작은 여관방을 얻어 작업을 하시는 모습, 미안해 하시는 모습 ~ 당시야 정기공연 인접해서는 얼마 안되는 봉급이지만 집에다 월급을 줄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학교에 발령받아 와서도 똑 같은 현상으로 부인에게 할 말이 없었다.(뮤지컬 작업하는 것만해도 感謝했다.)
 
오늘 김선생님을 다시 생각해 보니 그래도 그때가 좋았었지! 추억이 아련한 현실이었다.

그분이 없었다면 오늘날 이렇게 뮤지컬 발전이 안되었을 것이다. 중요한 시기에 뮤지컬을 활성화 시키고 이룩한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겠다.

물론 당시 관변단체 출연은 자체단체 정기공연이었지만, 시립전속단체와 외부는 남사당보존회 등이 출연하였고, 작곡은 김정택과 출연은 김성원, 고설봉 등 외부객원과 후원은  KBS 방송공사와 스포츠조선, 로제화장품은 육교현판과 프로그램 등, 지원금이 없는 후원들이 그나마 위안이 되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도 感謝한 일이었다.
김상열 연극상이 잘 운영과 진행되기를 기도합시다.

최창주 <전 한예종 교수, 비평가협회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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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7/10/24 [07:41]  최종편집: ⓒ 국악디지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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