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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1등만 기록한다고 누가 그랬나?”
아름다운 2위의 두 얼굴
임도건컬럼리스트 기사입력  2018/02/20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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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통예술신문 컬럼리스트 임도건]그제 화두가 이상화였다면, 어제 주인공은 차민규다. 남녀 500미터 경기에서 두 선수는 묘한 대비를 이루었다.

이상화가 회한의 2위였다면 차민규의 은메달은 뜻밖의 희망이다. 기록은 깨지기 위해 존재한다고 했던가? 각본 없는 드라마는 또 이변을 낳았다. 베테랑 이상화와 신예 차민규의 부침은 평창의 분위기를 절정으로 이끌었다. 
      

밴쿠버-소치에 이어 평창에서 3연패를 노린 이상화는 끝내 꿈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의 고다이라(36”94)에게 불과 0.39초, 자신의 2연패 기록에 0.05초 뒤진 기록(37”33)이다. 4년 전과 차이가 없는데도 아쉬운 2위로 막을 내렸다. 한 치도 나무랄 데 없는 질주였다. 육상에 우사인 볼트가 있다면 빙상 500에는 이상화의 세계신기록(36”36)이 있다. 빙속의 전설로 불리기에 충분하다. 슬프고도 아름다운 은메달. 너무나도 애석한 2위. 온 국민이 함께 울었다.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소트니코바에게 금메달을 양보한 소치의 김연아 눈물이 겹친다. 인간역사에서 그보다 아름다운 순간이 있을까?

인간에게 기쁨과 환희, 아쉬움과 회한, 분노와 억울함, 사랑과 감동 등 다양한 눈물이 있지만 공통점은 하나다. 가슴에서 잉태된 눈물, 눈에서 출생하고 두 뺨에서 살다가 입술에서 죽는다. 장엄한 종말이다.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고 누가 그랬나? 1등보다 더 깊이 각인될 2등은 이상화, 김연아, 차민규 말고도 더 있다.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에 오른 뉴질랜드의 에드먼드 힐러리 경(Sir).
해발 8848미터의 세계최고봉 에베레스트는 중국에 인접한 네팔의 고산지대로 전체규모의 2/3 가 성층권에 속해 있는데다 산소부족과 강풍 및 혹한 때문에 죽음의 고지로 불린다. 1953년 E. 힐러리가 최초 등정한 이래 2004년 한 해 330명이 오른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에서는 1977년에 고상돈이, 87-88년 겨울에 허영호가, 그리고 93년에는 동국대학교 원정대가 정상을 밟았으나 대원(안진섭) 하나가 목숨을 잃었다. 산악인들은 왜 죽음의 한계에 도전할까? 힐러리 경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해답은 “베이스캠프.”
 
그러나 최초로 정상에 오른 자는 힐러리가 아니라 그를 안내한 네팔인 셀파 ‘텐징 노르게이’다. 그는 말한다. "나는 카메라를 다룰 줄 몰라 힐러리를 정상에 세우고 사진을 찍어주었다." "한발 늦게 정상에 오른 것이 부끄러운 일이라면, 나는 평생 그 부끄러움을 안고 가겠다." 
힐러리 경은 텐징의 사망 후, 한 기자회견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나보다 먼저 정상에 도착해 탈진한 나를 기다렸고 인류 최초의 등정이란 영예를 내게 양보했다. 그는 위대한 셀파다. 내가 에베레스트에 첫발을 디딘 게 중요한 게 아니라, 그와 함께 오르면서 겸손과 관용을 배웠다는 점이다. 내가 이곳 네팔에 병원, 학교, 비행장을 세우려는 것은 그의 위대한 배려와 헌신을 기리고자 함이다."

이후 에베레스트의 “루클라” 공항은 “힐러리-텐진” 공항으로 개명되었다. 역사는 1등만 기억한다고 누가 그랬나? 역사가 기억할 아름다운 2등, 텐징 노르게이.
엄홍길도 말한다. "내가 산을 정복한 게 아니라 산이 그 정상을 허락했다"고.
이탈리아 등반가 R. 메스너. '악마의 산'으로 불리는 낭가파르밧(해발8,125m)에 무 산소 등정에 성공한 뒤 이렇게 말했다. "나는 두려움을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터키의 시인 나짐 히크메트가 위대해 보이는 순간이다.

“가장 훌륭한 시는 아직 쓰이지 않았고, 가장 아름다운 노래도 아직 불리지 않았다.
최고의 날은 아직 살지 않는 날들.
가장 넓은 바다도 항해되지 않았고, 불멸의 춤도 새 주인공을 기다린다.
가장 빛나는 별도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무엇을 할지 알지 못할 때 비로소 진정한 여행이 시작된다.”
시, 음악, 바다, 그리고 별, 무엇 하나 종착점은 없다. 인생이 긴 소풍이란 말은 여전히 진리다. 이상화가 베이징 올림픽(2022)에 나설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의 아름다운 질주와 퇴장은 차민규와 한국빙상에 새로운 도전이다.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이상화! 아름다운 여성으로 행복하게 살기를 응원한다. 그대가 있어 2월은 행복했노라.

쇼트트랙 1000/3000/5000미터 계주, 스킵 김은정이 이끄는 여자 컬링 팀의 메달 가능성이 높아지는 가운데 팀 추월과 매스스타트까지 남아있다. 심석희, 황대헌, 최민정, 이승훈의 후회 없는 질주가 기대되는 슈퍼 위크. 0.39초와 0.01초가 역사를 바꾼 빙상. 0.3-4초를 줄이고자 4년을 기다린다. 스트로크 하나가 한 달 치 땀방울이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싱그러운 아침햇살에 부끄럽지 않은 하루이기를 다짐해 본다. 가장 아름다운 별은 나타나지 않았다. 내일의 스타는 바로 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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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18/02/20 [09:00]  최종편집: ⓒ 국악디지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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