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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국악 무엇이 문제인가(2)
국립국악원의 태동
김갑식 편집국장 기사입력  2020/07/27 [22:03]

 

[국악예술신문=김갑식 편집국장] 전통음악과 무용을 보존·전승하고 보급·발전시키고자 설립된 국립음악기관은 신라시대 이후 내려온 궁중음악기관에 그 기원을 둔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신라의 음성서(音聲署), 고려의 대악서(大樂署)와 관현방(管絃房), 조선의 아악서·전악서·장악원(掌樂院), 대한제국 시대의 교방사(敎坊司)와 연관이 있고, 일제 시대 이왕직아악부(李王職雅樂部)와 해방 이후 구왕궁아악부(舊王宮雅樂部)로 이어진 셈이다.

 

1913년 아악대(雅樂隊)가 아악부로 이름이 바뀐 이왕직아악부는 서울 종로구 당주동 128번지에 있었던 봉상사(奉常寺)의 주고(酒庫)를 수리하여 청사로 쓰다가, 1925년 종로구 운니동 98번지에 새로 지은 곳으로 옮겨 활동하던 중 해방을 맞았다.

 

초대 김종남(金宗南)에 이어 함재운(咸在韻명완벽(明完壁김영제(金寗濟함화진(咸和鎭) 5대까지 이어졌고, 1920년부터 아악생을 모집하여 장악원의 전통을 이었다. 이러한 전통이 해방 이후 한때 구왕궁아악부로 존속하다가 국립국악원으로 이어진 것이다.

 

1948년 구왕궁아악부의 대표였던 소남(韶南) 이주환(李珠煥·1909~1972)은 아악원(雅樂院) 국영(國營)에 관한 청원서를 국회에 건의하였는데 제115회 국회 본회의에서 청원 결의가 만장일치로 통과된다.

 

이후 1950119일 대통령령 제271호로 국립국악원의 직제가 공포되었다. 모두10조 부칙으로 문교부장관 감독하에 국립국악원을 둔다고 명시, 국가 차원의 국악 진흥이 본격 가동된 것이다.

 

다음해인 1951496.25 와중에서도 초대원장에 이주환이 임명된다. 소남은 가곡과 가사의 최초 예능보유자로 제자 양성과 가곡의 악보 작업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예술가이자 행정가, 교육자의 길을 걸으며 평생 이 나라 국악 발전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기울인 선구자였다.

 

국립국악원은 20174월 한달 동안 개원 66주년 기념공연으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명인시리즈로 전통 국악 공연 목요풍류를 기획, 두 번째 목요일에 정악단 정가 연주자들이 모두 출연해 소남이 즐겨 부르던 가곡, 가사, 시조 11수를 소개했다.

 

초대 원장이 임명된 다음날인 부산시 동광동의 한 목조 건물에서 개원한 국립국악원은 2년 여 피난지 항도에서 어려움 속에서도 전통 음악에 대한 연구와 연주 활동을 펼쳐 전쟁으로 고통받는 국민들의 마음을 위로해 주었다.

 

휴전 후  환도 직후인 539월 서울 종로구 운니동에서 새로 자리잡은 뒤 다음해에는 부설로 국악사 양성소(소장 이주환)'를 운영하여 전문국악인을 통한 전통음악 보급의 토대를 마련했다.(계속)

김갑식 편집국장 gugakpeople@gugak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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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사회 김갑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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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0/07/27 [22:03]  최종편집: ⓒ 국악디지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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