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전통문화예술 >
필자의 다른기사 보기 인쇄하기 글자 크게 글자 작게
특집 / 명인 명창 - 김소희, 여전히 살아 있는 영원한 소리
백년에 한 번 날까 말까하는 명창
김갑식 편집국장 기사입력  2020/08/31 [16:55]

 

쑥대머리 귀신형용 적막옥방에 찬자리여 생각나는 것은 임뿐이라

보고지고 보고지고 ...“

 

우리 시대의 국창으로 불리던 만정 김소희. 그의 구성지고 애잔하고 청아한 소리에 실려 전해지는, 감옥에 갇힌 춘향의 애닲음. 만정 선생의 판소리 춘향가 쑥대머리를 듣고 있자니 문득 그와 창문 사이로 마주하고 있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그 단아한 모습, 만년소녀 같은 수줍은 미소, 깊은 생각이 담긴 눈빛.

필자는 1985, 바늘로 쿡 찌르면 푸른 물이 뚝 뚝 떨어질 것 같았던 시퍼런 하늘이 눈부셨던 어느 가을날 오후, 광화문 인근의 한 호텔 커피숍에서 만정 선생과 마주앉아 있었다. 신문사 출판국 기자로 선생을 취재하기 위해서였다.

선생의 고운 모습은...참 이상하게도 지금 자판을 두드리는데...35년의 세월이 타임머신을 타고 건넌 듯 마치 사흘 전처럼 선명한 사진으로 떠오른다.

그리고 그로부터 십년 후 천상의 어느 분이 만정 선생을 곁에 두고 소리를 듣고 싶어했을까. 만정 선생은 홀연히 하늘로 올라갔다. 소리만 남긴 채...

<김갑식 편집국장>

 

 

▲     © 선임기자김태민

`만정 그대 노랫소리에는 고창 흥덕의 옛날 못물에 몇 만년 이어 핀 연꽃이 들어 있도다. 학같이 훤출하고 거북이처럼 질기던 이 겨레의 바른 숨결이 잠겨 있도다`

 

일찍이 미당 서정주 시인은 김소희를 기리는 시를 써서 그 놀라운 소리를 표현했다.

 

만정 김소희. 그가 이승을 떠난 지 35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아직도 그의 소리는 여전히 300만 국악인들의 가슴속에 살아남아 있다.

 

본명 순옥(順玉) 호가 만정(晩汀)인 김소희는 1917년 전라북도 고창(高敞)에서 부친 김상호, 모친 김금영 사이에 태어났다. 백년에 한번 날까 말까하다는 천부적 목소리라고 하여 NYT그리스에 마리아 칼라스가 있다면 한국에는 김소희가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13세에 당대의 명창 송만갑의 제자로 국악에 입문한 김소희는 그 해 제1회 남원 춘향제에서 1등상을 타 애기 명창으로 알려진다.15세에 상경, 조선성악연구회에서 당대의 명인들에게 소리기악 등을 두루 사사하였다.

 

 

 

 

▲   2015년 김소희 추념 음악회에 참석한 유가족과 제자들.

 

20세 이전에 이미 명창의 반열에 오른 그는 학교 정규 교육을 독학하였을 뿐만 아니라 정악, 한학, 서예 등을 익혀 그의 예술에 품격을 더했다. 판소리 춘향가 김소희 제()를 창제하고 1964년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가 되었다.

 

열과 성을 다한 도제 교육으로 이명희, 신영희, 안숙선 등 많은 제자를 길러 냈으며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를 설립하여 국악의 제도권 전문 교육의 초석을 놓았다. 특히 해외공연을 통하여 한민족의 유구한 역사와 문화, 우리 전통음악의 진면목을 세계에 떨친 선구자이기도 했다.

 

1979, 고향 사람들은 고창에 국창 기념비를 건립하였고 생가를 복원하였다. 사후에는 판소리박물관에 유품 전시실을 만들었다.

 

김소희는 생전에 국민훈장 동백장,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동리대상(1), 방일영 국악상(1), 딸을 유명한 예술가로 잘 키워서 국가가 수여하는 예술가의 장한 어머니상 등을 수상했다.

 

1995417일 그가 세운 서울국악예술고등학교(현 국립전통예술고등학교) 이사장에 재직중 향년 79세로 별세했다. 묘소는 유언에 따라 고향에 모셨다. 특히 별세하기 전까지 이명희 제자가 직접 곁에서 김소희를 수발하며 모신 일화는 유명하다. 김소희가 영남 국악 진흥을 목표로 만든 영남판소리보존회의 이사장을 맡겼던 이명희는 20193월 지병으로 별세했다.

 

김소희가 별세하자 정부는 금관 문화 훈장(1)를 추서하고, 같은 해 815일 광복 50주년을 맞아 광복 50주년-역사를 만든 한반도의 주역 50에 선정하였다. 또한 20세기가 저물어가던 199911월에는 20세기, 전북 인물 50에 선정되기도 하였다.

 

김소희는 판소리, 민요 등의 명음반들과 다수의 창극 창작품들을 남겼다. 슬하에 21중 생존해 있는 박윤초 서울예술대학교 석좌 초빙교수가 어머니의 예술을 계승하고 있다.

 

202059코로나 19’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김소희가 소리로 살아 있음을 깨닫게 했다. 이 날 오후 5시 고양시 소재 고양아람누리 새라새극장에서 관객 거리두기로 제자인 국가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춘향가 보유자 신영희가 무대에 올라 스승의 춘향가를 열창한 것. 스승의 소리를 하며 신영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김갑식 편집국장 gugakpeople@gugakpeople.com


 

트위터 트위터 미투데이 미투데이 페이스북 페이스북 요즘 요즘 공감 공감 카카오톡 카카오톡
글로벌시대! 세계속의 한국! 한국 속의 세계화를 열어가는 국악디지털신문
정치/사회 김갑식기자
 
광고
기사입력: 2020/08/31 [16:55]  최종편집: ⓒ 국악디지털신문
 
닉네임 패스워드 도배방지 숫자 입력
내용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는 글, 욕설을 사용하는 등 타인의 명예를 훼손하는 글은 관리자에 의해 예고 없이 임의 삭제될 수 있으므로 주의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