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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의 영원한 소리 아리랑(3)
아리랑의 어원을 찾아서 _ 오죽하면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아리랑 어원설엔 말도나 많다’라는 아리랑 가사까지 전해지겠는가.
김갑식 편집국장 기사입력  2020/11/03 [18:20]

 

[국악예술신문=김갑식 편집국장] <‘아라리'는 아주 오랜 시기부터 불려온 노래다. 무정형의 산간 지역 사람들의 소리로 신가적(神歌的) 성격에서, 여말선초(麗末鮮初)에 들어 특정 주제인 충절과 망향의 정 그리고 저항과 애소의 정서인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란 의미의 '알리오'가 부각되며 '아라리'라는 이름을 띤 지역 소리로 재편되었다.

 

바로 이때부터 불려진 사설 중에서 고려 절신들의 시가 사설화된 것이 확인된다면 그것은 주목할 만한 사실이 아닐 수 없다. 왜냐하면 아라리 전설의 율창 시원설'이나 '알리오 어원설'을 입증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리랑의 시원을 여말선초로 말할 수 있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아리랑 시원설 연구라는 책을 펴낸 김연갑은 정선 지역에 전해지는 이야기를 분석하여 율창  시원설(律唱始原說)’한시 시원설(漢詩始原說)’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아리랑이 여말선초부터 불리게 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율창 시원설은 여말의 유신들이 정선에 은거하며 자신들의 처지를 한시로 지어 부르면서 정선아리랑 가락이 형성되었을 거라는 시각이다. 한시 시원설은 한시를 아는 지역의 선비들이 이를 우리말로 풀어 토착민들에게 전해주어 전승되었을 거라는 추측이다.

 

▲ 아리랑의 어원에 대한 학술적 주장은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 개에 이른다.     © 선임기자 김태민

반면 아리랑은 중국어이다라는 이색적 제목의 책을 펴냈던 조용호는 여말 위화도 회군 이후 개경이 역성혁명군에게 봉쇄당한 뒤 많은 충신들이 살해되던 그 참담한 시기에 일종의 암호화된 문장이 아리랑이라고 주장한다. 또 아리랑이라는 말 자체가 중국어라는 것이다.

 

아리랑은 중국어다(?)”

<우리말은 평범한 음조로 되어 있는데 반해, 아리랑은 중국어 성조(聲調)를 따라 성조가 지어졌을 것이기 때문에, 초기에는 특별한 리듬 없이도 중국 4성조에 따라 특정한 운율을 살릴 수가 있었을 것이다.

 

따라서 아리랑은 특정한 시기까지는 지금과 같은 형태의 리듬이 아니고, 중국어 4성의 리듬으로 불린 시조 형태였을 것이다.>

 

정선아리랑이 다른 토속민요보다 한문형 사설이 많다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조용호의 주장도 일리는 있다.

 

19171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의 포로가 된 고려인 유 니콜라이는 각 민족의 언어·음악 자료를 수집하던 독일 학자의 조사에 응해 아리랑을 불렀다. 그는 러시아군에 징집됐다가 독일군의 포로가 됐다.

 

아라릉 아라릉 아라리요~’ 그가 부른 아리랑은 1896년 구한말의 선교사 헐버트(1863~1949)가 서양악보로 처음 채보한 아리랑의 후렴구와 일치한다.

 

헐버트가 영문 월간지 ‘The Korean Repository’(1896) 2월호에 실은 아리랑에는 문경새재 박달나무 홍두깨 방망이로 다 나간다는 사설이 들어 있다. 조선 후기 임금이 밤마다 아리랑타령을 즐겼다는 기록도 있다.

 

헐버트는 아리랑은 한국인에게 쌀과 같은 존재라고 소개하였다. 아리랑은 1926년 한국 최초의 장편 영화 아리랑의 주제 음악으로 쓰여 유명해졌다. 이상숙(李上淑)이 부른 주제가 아리랑은 영화감독 겸 영화배우인 나운규와 단성사 음악대가 창작한 곡이다.

 

아리랑은 세대, 성별, 계층, 문화적 차이를 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으며 동경과 대만에까지 레코드를 통해 전해졌다. 일제 탄압에 항거하는 상징으로 승화된 것이다.

 

20여 개나 되는 아리랑 어원설

지금까지 아리랑의 어원을 찾으려고 주장한 학술적 내용은 알려진 것만 해도 20여 개에 이른다. 필자가 지금까지...알려진이라고 한정시킨 것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선가 새로운 설을 제기하려는 의욕 넘치는 노력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아리랑 어원백설(語源百說)’이란 말도 있고 청천 하늘엔 별도 많고 아리랑 어원설엔 말도나 많다라는 아리랑 가사까지 전해지겠는가.

 

사실 어느 학자는 이제 더 이상 아리랑 어원설은 내놓지 말자는 약조라도 하자고 제안을 하기도 했다. 그만큼 아리랑 어원설을 따지는 것은 시간 낭비이고 무의미하지 않겠느냐는 일종의 호소 같은 것이었다.

 

하지만 그가 꺼낸 제안이 효력을 가지리라는 전망은 불확실하고 불투명할 뿐만 아니라 아예 불가할지도 모른다. 아리랑이 갖고 있는 생명력이 너무도 끈질기고 역동적이며, 오늘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숨쉬고 있기 때문이다.

 

사학자 김병곤은 이태조 무인들에게 피해를 입은 백성들이 이태조에 방임하여 만들어진 노래가 '아리랑'이라고 단정한다. 그는 1935년 여름에 매일신보6차례 연재한 글을 통해 이같이 밝혔다.

 

<啞耳聾, 亞耳聾 啞耳聾, 啞耳聾이야 啞耳聾 고개나 노다 가세- 이러한 민요가 생긴 것이다. 실로 위험천만한 세상이니 벙어리 되고 귀 먹은 체해야 백년일생을 한없이 지나리라는 것이다.

 

지금의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간다는 아리랑은 즉 저 아이롱(啞耳聾)의 와전이거니와 노다가세라는 구절이 넘어간다는 구절로 변하게 된 것은 그 후 몇 세기를 지난다.>

 

이밖에도 임동권, 정익섭, 정동화 3인이 주장한, 흥을 돋우고자 했다는 고대 시기의 후렴설’, 이규태가 주장한 여진어의 아린(고랑)’에서 유래했다는 아린설’, 최재억의 총각·처녀 뜻이라는 알랑[卵郞]’ 또는 알낭설[卵娘說]’, 원훈의의 알흐다->알히다->아리다.

 

아리++에 따른 아린고개의 아리다설[疼痛說]’, 이병도의 낙랑(樂浪)에서 남하하는 교통로의 관문인 자비령의 이름, 아라의 전음(轉音)낙랑(樂浪·아라)이다.

 

또 양주동의 지명에 의한 발[光明]>>아리 (>어리, >오리, >우리)에서 왔다는 아리+()’, 김지연의 삼국유사 및 삼국사기를 근거로 한 알[영정_英井] 및 알[영천_英川]에서 유래된 박혁거세의 기[]알 영()’, 김재수의 전설에 따른 아랑(阿娘)의 원귀설(怨傀說) 즉 아랑의 전음 아랑설(阿娘說)’,

 

김덕장의 전설에 나오는 처와 이별을 슬퍼하는 뜻에서 유래되었다는 아리랑설(我離娘說)’, 남도산의 역시 전설에서 유추한 나는 귀가 먹었다에서 유래된 아이농설(我耳聾說)’, 강대호의 전설에 따른 집을 떠남의 어려움을 읊음에서 유래된 아난이설(我難離說)’이 있다.

 

또한 권상로와 일본학자들이 구비자료에서 유추한 벙어리며 귀머거리라는 아이농설(啞而聾說)’, 일본학자들이 역시 구비자료로 유추한 아(), (), (), ()을 경계하자는 의미에서 제기한 아미일영설’,

 

이능화가 구비자료에서 유추한 상량문의 아한위(兒限偉) 포랑동에서 유래된 아한위설’, 정선설화에 나오는 누가 내 마음을 알리오알리에서 유래된 알리오(아리오)’,

 

서정범의 고어에서 유추한 근원적인 것, 핵심으로서의 알[]에서 유래된 알아리오의 알[], 정익섭의 유추적 해석에 따른 알리알리>아리아리에서 나온 알리알리설’,

 

김연갑의 종합적인 고찰로 뫼[]아리(메아리)->아라리->아리랑이 나왔다는 메아리설등이 있다.

 

 

 

본조아리랑 가사

 

아리랑 아리랑 아라리이요

아리랑 띄여라 노다가라

 

아라사 아차하니 미국놈 믿지 말라

영국은 영 글렀다 일본놈이 일등이다

 

이씨의 사촌이 되지 말고

민씨의 팔촌이 되려므나

 

남산 밑에다 장충단를 짓고

군악대 장단에 받들어 총만 한다

 

아리랑고개다 정거장 짓고

전기차 오기만 기다린다

 

문전의 옥답은 다 어디로 가고

쪽박의 신세가 웬말이냐

 

밭은 헐려서 신작로 되고

집은 헐려서 정차장되네

 

말깨나 허는 등 재판소 가고

일깨나 허는 놈 공동산 가네

 

아깨나 낳을 년 갈보질 가고

목도깨나 메는 놈 부역을 간다

 

조선 팔도 좋다는 나무는

경복궁 짓느라 다 들어간다

 

마고자 실갑에 서양 총 메고

북망산 벌판에 접전가자

 

경성부내 불은 소방차가 끄고

요 내 가슴 불은 어느 낭군이 끄나

 

자동 기차는 서양식으로 놀구

우리 님 사랑은 이 내 품에서 논다

 

할미정 꼭대기 진()을 치고

왜병정(倭兵丁) 오기만 기다린다

 

오라배 상투가 왜 그런고

병자년(丙子年) 지내고 안 그런가

 

개남아 개남아 진개남아

()많은 군사(軍士)를 어데 두고

전주(全州)야 숲에서 유시했노

 

봉준(奉準)아 봉준(奉準)아 전봉준(全奉準)

양에다 양철을 짊어지고,

놀미 갱갱이 패전(敗戰)했네

 

우리 딸 *지는 금*지인지

열 넘는 식구(食口)를 다 살려 간다

 

우리 딸 수단은 별수단이지

열 넘는 식구(食口)를 다 살려 간다

 

우리 딸 품행이 얼마나 방정한지

공단 속 옷감이 열두 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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