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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9회 국립국악원 우수학술상 수상작 발표
'인천아리랑의 최초의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 -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
전미선기자 기사입력  2021/01/15 [12:21]

[국악디지털신문=한국음악전문기자 전미선] 국립국악원(원장 임재원)은 국악학술과 우수인재 발굴을 위해 지난 202010월 한 달간 제9회 국립국악원 학술상을 공모하였다. 공모결과 인천에서 활동하는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가 '인천아리랑의 최초의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로 우수학술상(국립국악원상)을 수상했다.

▲ ‘인천아리랑의 최초의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로 제9회 국립국악원 우수학술상을 수상한 문화예술 사회적기업 '전통연희단 잔치마당' 서광일 대표(오른쪽). 왼쪽은 임재원 국립국악원장.     © 사진 국악디지털신문.

 

 

     우수학술상으로 선정된 인천아리랑의 최초의 기록과 선율에 관한 연구19세기 조선말 개화기에 인천지역에서 불렸던 인천아리랑의 최초 기록과 음악적 선율·곡조에 대해 규명하고자 하였다.

 

     일제가 조선을 통치하기 이전에 한국 최초로 채록된 인천아리랑의 생성유래를 살펴보고 항일과 배일감정을 담은 노래가사의 정체성을 고찰했다. 또한 인천아리랑이 어떠한 선율과 곡조로 불렸는지, 그 당시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유행되었던 자진아리랑(구조아리랑)‘ 계통의 악곡과 어떠한 음악적 연관성을 갖고 있는지를 비교분석했다.

 

     연구 결과 첫째, 인천아리랑은 우리나라 최초로 기록된 아리랑임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자료로는 18945월 일본에서 발간한 유우빈호우치신문’ ‘조선의 유행요’, 18948월 일본인 유학생 홍석현의 신찬조선회화‘, 1904년 하시모토 데이수케(橋本貞造)신찬일한회화에서 인천이라는 지명이 들어간 아리랑 가사를 유학생과 일본인들에 의해 기록된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이것은 1896년 아리랑을 오선보로 최초 채보한 H.B.헐버트 아르렁과 같은 해 조선인 유학자에게 아리랑을 최초 음원으로 녹음한 A.C.플레체 아라랑보다 2년을 앞서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둘째, 인천아리랑 가사 내용의 정체성은 항일정신과 배일감정을 노래로 표현하고 있다. 인천은 1883년 개항 이후 많은 일자리가 생겨나면서 각 지방에서 노동자들이 모여드는 도시가 되었다. 이 과정에서 민요의 대이동이 일어났으며 인천아리랑의 노래가사도 생겨나게 된 것이다.

 

     전해지는 가사는 3절이며 노래가사 중 1절은 인천제물포 살기는 좋아도 / 왜인(왜놈) 위세(등살)에 못 살겠네라는 부분은 그 당시 일본인들이 인천에 가장 많이 들어와 있던 시기에 배일감정(排日感情)을 나타냈다는 점에서도 의의가 있다. 왜인(왜놈)이라는 가사는 외세에 반항하는 민중들의 염원이 드러난 항일정신이 깃든 노래라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다.

 

    2절은 에구 데구 흥 성화로다 흥 / 단 둘이만 사자나 흥은 노동자의 힘든 삶을 서로 의지하며 살자는 현실을 표현하고 있다. 3절은 산도 설고 물도 설고 / 누굴 바라고 여기 왔나라는 부분은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의 서러움을 표현하고 있다. 인천아리랑 가사는 근대 민요로서 일반 아리랑과의 거리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즉 상업적이거나 유흥적이기보다는 노동의 현장에서 현실성 있게 저항성을 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셋째, 인천아리랑 가락의 모곡은 경기 자진아리랑(구조아리랑) 계통의 악곡이다. 개화기에 경기 자진아리랑 계통의 악곡은 서울과 경기지역에서 기층민중과 전문예인들에 의해 유행되었고, 1896H.B.헐버트는 아리랑을 오선보에 채보했다.

 

    1914년 이상준은 조선속곡집에 아리랑타령으로 채보하였으며, 1933년 김죽파는 가야금병창 자진아리랑을 음원으로 수록했다. 따라서 이들이 기록한 자료와 음원을 비교해 보면, 우리나라 최초 아리랑을 오선보에 채보한 H.B.헐버트 아르렁은 경기 자진아리랑 계통의 악곡이며, 이는 인천아리랑의 모곡임을 이번 논문으로 확인했다.

 

     이번 학술상 심사위원으로 참여하였던 고려대학교 국문학과 교수 유영대 심사위원은“19세기말 인천지역에서 불렸던 인천아리랑에 관한 총체적 연구이며, 이 논문의 장점은 관련기록을 철저하게 찾아서 확인한 점이라며 인천아리랑의 노랫말을 논리적으로 명쾌하게 분석하고 있다는 점도 장점이라고 지적했다.

 

     또한 선율과 곡조에 대한 분석도 기존의 견해에 대하여 자신의 독창적 견해를 첨가하고 있어 우수한 논문으로 평가했다. 백석예술대학교 한국음악전공 교수 윤아영 심사위원은 인천 아리랑의 발생 시기를 아리랑 음악의 전파 경위를 역사적으로 고증했으며 인천 아리랑의 음악적 분석을 통해 경기 구조 아리랑 계통임을 밝힌 최초의 논문이라며 인천 아리랑이 최초로 기보된 아리랑이라는 점을 밝힌 것은 학계에 기여도가 상당하다고 밝혔다.

 

    수상작으로 선정된 논문은 20214월에 발행되는 한국연구재단 등재지 국악논문집에 게재되는 특전이 부여된다.

 

     한편 서광일 대표는 현재 사)한국국악협회 이사, 국가무형문화재 제3호 남사당놀이 이수자, )부평풍물대축제 행사국장, 단국대학교대학원 국악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서 대표는 이번 논문으로 학문적으로만 전해지는 인천아리랑이 음악적 선율과 곡조가 인정되었다인천이라는 근대 개항공간에서 불린 지역적 가치를 조명하고 300만 인천시민이 함께 부르는 문화예술의 콘텐츠로 확장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국악과 나라를 살리는 국악디지털신문 전미선 기자

     gugakpeople@gugakpeopl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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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음악전문기자 전미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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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입력: 2021/01/15 [12:21]  최종편집: ⓒ 국악디지털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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